숙주인간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사랑의 감정이 그저 호르몬의 작용이라고 말을 하면, 아이들이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거나,

그 말에 수긍이 간다고 하는 몇몇 아이들의 표정에서도 그들이 느끼는 씁쓸한 뒷맛이 눈에 보인다.

인간의 행동이, 심지어 이타적인 행동조차도 유전자의 조종에 의한 것이며

우리의 뇌와 몸은 유전자의 명령을 행하는 생존기계라고, 책에서 읽었다고 말을 하면

인간의 고귀한 자유의지와 이타심을 짓밟는 비인간적인 발언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호르몬과 유전자에 이어서, 이번엔 기생생물의 차례이다.


저자는 신경기생생물이 숙주의 행동을 조작하는 다양한 예와 연구를 보여준다.

말벌은 자기보다 덩치가 큰 바퀴벌레의 다리 외골격에 알을 낳기 위해

바퀴벌레의 중추신경을 파괴하고 더듬이를 살짝 잡아당기는 것만으로 바퀴벌레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말벌의 독이 바퀴벌레의 중추신경을 파괴해서 이상행동을 하게 한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뇌를 제거한 바퀴를 암컷 말벌에게 준다. 말벌은 바퀴의 머리를 8분 동안 침으로 휘저어 뇌를 찾으려고 애쓰다가 화를 내고 밀쳐버린다.

말벌은 침 끝에 바퀴벌레의 뇌의 압력과 장력을 감지하면 기분을 좋게 만드는 도파민이 분비된다고 한다.

영화 연가시도 기생생물이 인간의 행동을 조종한다는 가정을 토대로 한 영화이다. 이쯤 되면 유전자가 내 몸의 주인인 것보다 더 기분이 나빠진다.

유전자는 자신의 사본을 퍼뜨리기 위해 나의 생존과 생식에 유리하게 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기생생물은 자신이 살기 위해 숙주를 이용하고 숙주에게 해를 입힌다.


끔찍한 예시 뒤에는 그나마 안심할만한 이야기도 있다.

식물이 화학물질로 동물을 길들이기도 하는데 식물은 카페인을 만들어서 벌을 똑똑하게 만들고 다시 이 꽃을 찾아오라고 조종을 한다.

그 앞의 이야기보다는 기분이 한층 나아진다.

‘T. 곤디라는 세균은 쥐의 뇌에 침입해서 더 많이 증식하기 위해

쥐가 더 활발하게 행동하도록 유도하는데 인간도 이 세균에 감염된다.

감염 후에 도파민 생성 유전자가 공포회로를 차단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충동적 행동을 더 많이 하게 한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행동은 실험으로 감지는 될 정도로 미미하게만 영향을 받는 걸로 결론이 났다.

인간의 성격과 행동과 삶이 세균에 의해 조종될 만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전자의 영향이 훨씬 크다. 하지만 감염에 취약한 사람은 톡소플라즈마에 의해 조현병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애완용 고양이가 이를 옮기기 때문에 애완동물의 배설물 처리에 신경을 써야되고 구충제를 먹이고 동물의 치료비에 보조를 해주어야 된다고 역설한다.


책은 계속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감기바이러스가 숙주인간의 사회적 작용을 증가하게 한다든지,

광견병의 증상이 뱀파이어와 비슷한 점을 들어 뱀파이어는 중세의 가상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개와 고양이가 옮기는 회충의 톡소카라는 아이들의 지능에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살이 찌도록 만드는 미생물도 존재한다. 물론 그 영향력은 미미하지만 말이다.


심지어 세균과 감염병에 대한 감수성 때문에 장애인 혐오증, 외국인 혐오증이나 정치적 성향이 결정된다고 주장하는데 까지 가다보면,

외계인이나 좀비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과 일반적인 과학 사이의 어디쯤에 이 책이 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과학자들이 흥미로운 연구를 하기 위해 연구비를 어떻게 얻어내는지에 대한 이야기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연구방법을 쓰는가에 대해 아는 것도 흥미로웠다.

번역자가 의사여서 한자 용어보다 우리말 용어를 많이 쓴 것도 눈에 띈다.

보통 limbic system은 변연계라고 옮길 것을 둘레계통이라고 한 게 신선했다.

그 말을 읽고 뜻이 빨리 와 닿진 않았지만.


계속 책을 읽다보니 이젠 나를 조종하는 미생물들과 점점 친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미생물군유전체 microbiome는 나를 이루는 세포의 수보다 많은 미생물들이 나와 함께 한 덩어리가 되어 사는 하나의 군집이다.

행복감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와 어떻게 잘 지내느냐가 더 크게 작용한다더니,

나의 건강상태는 나에게 기생하는 기생생물과 어떻게 조화롭게 지내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오타

p.105 Jiri라는 인명이 지리이르지두 가지로 옮겨졌다.

p.180. 그렐린에 대한 설명이 뱃속에 음식이 가득차면 당신에게 수저를 내려놓으라고 신호를 보내는 호르몬이라 되어 있는데 이건 렙틴의 설명인 듯.

p.187 깜박 -> 깜빡

p.197 입속의 - > 입 속의, p. 155 구획 별로 -> 구획별로 (띄어쓰기해야 할 곳이 안 된 곳은 정말이지 수없이 많다.)

p.297 밝게 -> 밟게

p.228 도한 -> 또한


by 불타는구두 | 2019/06/24 10:04 |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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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불타는구두 at 2019/06/24 10:16
몇년 전에 3학년 학생이 자소서에 독후감 쓸 책이라 해서 같이 읽었던 거다.
아이가 추천한 책이나 동영상 보고 감상을 같이 나누는 거 정말 좋다.
학교에서 새로운 노트ㅜㄱ으로 바꿔준대서 자료 백업하다가 발견한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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