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요리사에게 들려준 이야기

"언니 과학샘이잖아. 엄마가 티비에서 봤는데 따뜻한 물이 찬물보다 빨리 언대. 안그럴 것 같은데 정말 그래?"
"그래 어쩐지 나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음... 물이 얼려면 물분자끼리 결합해야되는데 끓인 물은 그 안에 결합을 방해하는 공기가 없으니까 더 빨리 언다고 하더라."
"역시 그말 들으니까 맞는 것 같네"

집에 가서 다시 책을 들춰봤다.
아인슈타인이 요리사에게 들려준 이야기. 찬물과 더운물 얼리기, 이 논쟁은 17세기 프란시스 베이컨때부터 결론 나지 않은 이야기란다. 이 저자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알수없다" 가 답이다. 속도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을 뿐더러 실험을 하려고 해도 완벽한 변인통제가 불가능하고 (예를 들어 질량이 똑같고 온도가 다른 물이 든 두 그릇을 쓴다해도 냉동고의 똑같은 위치를 어떻게 차지하느냐 등의 완벽한 통제) 물이 어는 시점을 잡기가 힘들단다.

소금을 넣은 물에 스파게티를 삶으면 더 빨리 익나, 요리에 포도주를 넣고 가열하면 다 날아가나, 한여름의 아스팔트에 달걀을 익힐 수 있나, 등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다. 요리를 하면서 생기는 궁금증. 요리기구의 올바른 선택과 사용 등 생활의 팁도 얻을 수 있다.
자주 들춰보면서 수업 중에도 이야기해주고 첨 들어보는 미국적인 요리도 재료만 구할 수 있다면 따라할 수 있는 책.

PS, 아침 독서시간에 이책을 읽었더니 앞에 앉은 잘난 녀석이 묻는다. 그거 아인슈타인 하나도 안나오죠? 낚시죠? 한다. 아직 순진한 중학교 3학년.

by 윤정 | 2008/09/03 16:31 | "따옴표" | 트랙백 | 덧글(1)
레인맨
내가 수업 들어가는 반에 지폐아가 있다.
처음에 레인맨이네, 했더니 아이들이 안다.
너희들 영화봤어? 했더니 다른 선생님도 그러셨단다.

영화에서처럼 단순한 암기나 셈은 뛰어나다.
첫학기 이틀째에 시간표 이야기 하다 뭐가 바뀌었는데 아이들에게 시간표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레인맨이 다 외워요" 한다. 말을 해보랬더니 다 외고 있다.
"우리반 애들 번호랑 이름도 다 외울걸요" 본인에게 물어보니 정말 그렇다.
두자리수 곱셈도 한순간에 답이 나온다.
초등학교 영재교실에선 영재라고 오인받는 자폐아가 자주 발견된다고 한다.

근데 희한하게도 우리 학교의 레인맨은 다른 사람이랑 눈 맞추는걸 피하지 않는다.
수업시간에도 늘 공책을 꺼내 열심히 책 내용을 베껴쓴다.
한시간동안 서너페이지를 쓴 다음에 나에게 검사해달라고 하면 내가 공책 아래부분에 사인해준다.
그게 끝나면 앞 표지에 자기가 좋아하는 버스 번호판 그린것을 보여주면서
"선생님, 삼신교통 2588번을 좋아하세요?" 꼭 묻는다. 한번도 본 적 없는 그 번호를 내가 외울수 있을 정도로.

덩치는 거의 성인인데 순수한 얼굴과 눈빛을 십년 넘게 유지하고 있는 거겠지.
앞으로 잘 살아나갈지 걱정이다.
by 윤정 | 2008/07/18 16:03 | 교단일기 | 트랙백 | 덧글(0)
30년 뒤
울학교에 미국에서 온 원어민 선생님 짐.
며칠 전에 두꺼운 책을 갖고와선 나한테 필요하면 빌려주시겠단다. 후덜덜.
영어로 되어 있는데 생태학 책이다. 저자도 첨 들어본 에드워드 닐슨.
책을 펼쳐서 사진과 함께 보여주는데 미국 내의 멸종된 종들, 환경변화와 보존 등의 이야기다.

책이 너무 두꺼운 데다 영어로 된건 스트레스다, 대답해주곤 생물학 전공도 아니면서 이걸 읽냐고 물어보니 읽을만 하다고 한다.
미국 사람들은 생물학 전공이 아니라도 이런거 많이 읽냐고 하니까 이 저자가 쓴 책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단다.
한국 사람들은 돈버는 책, 처세(이걸 영어로 말을 못해서 그냥 인간관계라고 했다. ㅡ.ㅡ;;)에 관한 책만 읽는다니까
미국에도 그랬단다. 자기가 학생이던 30년 전에.
한국도 30년 뒤에는 돈 말고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질까?하니까
당연하지, 하신다. 그게 세상이 변하는 방향이란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생물학적 유물론, 인문학적 시각 등의 단어가 보이는 걸 보니 읽을만 하겠다.
번역된 책을 한번 읽어 보고싶다.

30년 뒤면 겨우 중학교 1학년인데도 12시까지 학원에서 자율학습 하는 일이 없어질까?
자식들 학원 보낼 돈 벌기 위해 밤 늦게까지 일해야 되는 엄마들이 없어질까?
그래야만 미래가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없어질까?
기다려진다.

by 윤정 | 2008/07/01 11:18 | 교단일기 | 트랙백(1) | 덧글(30)
폭력
한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길 하다가 우리 반의 다른 아이들한테서 맞은 이야기가 나왔다.
헉, 근데 왜 아무 말 안했니?
보복이 두려워서. 다른 친구들이 알게 되는게 싫어서, 그리고 부모님이 알면 안되니까.
그러고는 나한테 말하고 나니까 맘이 편하단다.

- 대신 일을 키우고 싶지 않으니까 못들은 걸로 해주세요.
- 다음에 또 맞게 되어도?
- 제가 잘하면 안때릴 거예요.
- 그런 애들은 자기가 기분 나쁘면 뭐든 시비를 걸어서 때려.
- 그래도 제가 잘 하면 돼요.

아버지에게 맞으면서 수없이 들었던 말일거다.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는 집인데 어릴 때부터 사소한 일에도 아버지에게 맞았댄다.
성격도 지나치게 소심하고 맞아도 끽소리 못할 아이.
때린 아이도 마찬가지다.
역시 부모에게 심각하게 맞고 자란 아이.

전에 티비에서 가정문제연구소인가 하는 단체의 곽배희 소장이 한 말이 생각난다.
하도 부부생활에 문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길 듣다 보니 실현가능성은 없긴 하지만 결혼자격증을 발급하자고.
근데 더 시급한 건 부모 자격증이다.
결혼하는 사람들이야 어느 정도 판단력을 가진 어른이고 이혼으로 끝낼 수도 있다.
부모 자격 없는 사람은 아무 죄 없는 아이의 시작부터 망치는 거다.

우선 피해자인 아이를 상담교사에게 보내서 상담을 한번 했는데
자존감이 너무 낮은데다 본인이 문제성을 못느끼는 것 같다고 한다.
본인은 공부를 못해서 자신이 없다고 하는데 자신감이 없으니 당연히 성적도 안나오는 거다.
그저 속수무책인 내 존재가 한심할 뿐이다.
by 윤정 | 2008/06/24 14:12 | 교단일기 | 트랙백 | 덧글(1)
소라

소라는 20년 전의 나랑 비슷하다. 지금의 나랑도 큰 차이 없어 보인다.
"소라야, 나랑 정말 비슷하다!!"

과학과 수학은 재밌는데 사회는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안오른단다.
아예 좋은 성적을 받길 기대하지 않는단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충고한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주위에 너무 관심이 없어서 그렇대. 신문도 자주 보고 티비도 자주 봐야돼"

여자애들이 팔짱끼고 같이 화장실 가는 것도 이해가 안간다고 했다.
"맞아, 나도 그랬어. 근데 그게 친구들과 친밀감에 문제가 생기더라구"

친구를 만드는 것도 힘들지만 애써 친구를 만들고 싶지도 않고 지금의 친구와 친하게 지내기만 바란단다.
엄마와의 의사소통에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친구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는 것 같다.
"우리 엄마도 그리 다정한 성격이 아니라서 나도 그런 것 같애, 우린 정말 똑같다."

의식적으로 노력 하지 않으면 지금 모자란 부분 그대로 자랄 것이다.
하지만 애써 바꿀 필요가 있나, 싶다.
성격이란게 일장일단이 있는데 모자란 걸 채우려면 또 다른 곳이 비게 되겠지.

by 윤정 | 2008/06/16 10:29 | 교단일기 | 트랙백 | 덧글(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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